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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인간에 대한 이야기

‘무의미의 축제’는 짧고 글씨가 큰 책입니다. 일반 소설책이라고 가정했을 때, 1시간 남짓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입니다. 하지만 3시간 이상 책을 읽었습니다. 짧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책입니다.

무의미의축제

 

작가가 이야기를 일부러 어렵게 풀어놓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다루고 있는 주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의 본질, 즉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10명 내외의 등장인물, 2~3일 내외의 소설 속 시간, 이것으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얼핏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사실 작가가 정말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책을 읽은 제 추측일 뿐이니까요.

 

저는 대학생 시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 읽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그 당시 제 수준으로는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죠. 그리고‘밀란 쿤데라’의 책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괜히 제가 어렵게 책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밀란 쿤데라’의 책은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책, 그리고 우리가 평소 깊게 들어가지 않는 부분까지 깊게 들어가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무의미의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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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20
거짓말을 했다고 부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의아했던 것은 그 거짓말을 왜 했는지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거짓말을 한다는 건 보통 누구를 속이거나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생기지도 않은 암을 꾸며 내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자기 거짓말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그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웃음 역시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는 왜 웃었을까? 자기 행동이 우스웠던 것일까? 아니다. 유머 감각이 그의 강점도 아니었다. 그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상의 암이 그를 즐겁게 했다. 그는 길을 가며 계속 웃었다. 그는 웃었고, 좋은 기분을 만끽했다.

 

종종, "내가 왜 거짓말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죠. 분명 안 해도 되는 거짓말인데도 말이죠.

 

p. 52~53
예상치 못하게 다시 찾은 삶은 마치 어떤 타격처럼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내리쳐 부숴 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죽음으로 온 힘을 집결시킬 기운이 없었다. 몸이 떨렸다. 한순간 모든 의지와 활력이 다 빠져나가고 그녀는 차를 세워두었던 곳을 향해 기계적으로 헤엄쳐 갔다.

 

여자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남자는 그녀를 구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그녀는 또 다른 선택을 합니다. 자신을 구해준 남자를 물에 빠뜨려 죽이죠. 대신 여자와 뱃속의 아이는 살아납니다. 예상치 못하게 다시 찾은 삶은 여자에게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꼭 죽음은 아닐지라도 이런 느낌, 살면서 언젠가 경험해 봤던 것 같습니다.

 

p.58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사과에 대한 논쟁을 벌이던 중 샤를이 내놓은 결론입니다. 좋은 말이죠. 하지만 이 말 뒤엔 또 반전이 있습니다. 이 말에 이어 알랭은 그 말을 어쩜 그리 슬픈 목소리로 하냐고 묻죠. 사과로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정말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그렇게 자신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p. 147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무의미의 축제’,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제목을 이해해 나갔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쯤에야 조금이나마 ‘무의미의 축제’라는 말의 의미가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